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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배의 [을의 경제학] 만수르 세트와 컵라면 유품

기사승인 2019.02.14  15: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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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컵라면이 10만개 모여야, 만수르 세트 하나의 가격을 이룬다

▲장흥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전 노동당 정책실장)

강남의 나이트클럽 버닝썬에서 일어난 폭행 사건이 최고 부자들의 씀씀이의 일단을 보여주는 기사로 한동안 이어졌다. 중동의 거부 이름을 딴 시가 1억 원의 ‘만수르 세트’가 압권이다.

루이 13세, 동페리뇽 같은 최고급 양주들로 구성된 만수르 세트는 영업 방식이 비슷한 다른 클럽에서도 가격과 구성을 달리하여 판매되는 상품이라고 한다. 현장 조사에 기초한 어떤 기사는, 어느 클럽의 하룻밤 매출을 1억2천만 원 정도로 추정했다.

2010년 타계한 역사학자 토니 주트의 저서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버닝썬과 만수르 세트에 엮인 이야기를 듣노라면, 사회가 어딘가 근원에서 잘못돼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이런 세상은 망해야 한다는 울분까지 생긴다.

성폭력, 뇌물, 마약 유통 같은 꽤 설득력 있는 불법 의혹들을 논외로 치더라도 그렇다. 수많은 누군가에게는 마련할 길 없는 전세나 월세 보증금에 해당하는 금액이 극소수의 누군가에게는 한 번의 술값이라는 사실. 오만 원권 지폐를 허공에 뿌리고, 이를 주우려 몰려드는 인파를 구경한 행위는 또 어떤가.

하지만, 이 감정의 근원과 그 감정의 정당성을 따져보는 것은, 즉각적인 개탄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실 버닝썬에서 일어난 일들이 얼마나 특별할까. 주체할 수 없는 부를 가진 이들이, 사회적 시선에 아랑곳없이 최대 효용을 느끼는 방식으로 부를 소비하는 행위는 지천에 널려 있다.

누군가의 목숨 값에 해당하는 금액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한순간의 취향일 뿐이라는 사실은 한 벌의 패션, 신품 자동차, 고가의 예술작품 등 다른 수많은 상품에도 통용되는 진실이다.

무엇보다 강남의 고급 클럽은 하나의 기업이며, 그 기업들이 투자한 시장이다. 여기에는 일자리가 있고, 상품과 서비스의 판매로 소득이 발생하며, 거래와 소득에는 세금이 부과된다. 이 시장 활동은 국내총생산(GDP), 서비스산업 생산성, 가계소비 등 각종 생산성과 경기지수에 플러스 요소로 반영되고, 이 지수들은 경제에 다시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가정된다.

소스타인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을 통해 차분한 어조로 조롱한 바 있는 부자들의 과시적 소비는, 지금 같은 불황기에는 더욱 칭송받는 미덕이 된다.

요컨대, 우리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일상인 시대를 산다. 여기에 분노한다는 것은 마치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일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정당화 논리를 갖지 못한 감정은 이내 사라져버리고, 세상이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일 뿐이라는 체념이 분노를 대신한 감정의 최대치로 남을 뿐이다.

▲ 생전의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故 김용균 씨 모습

많은 이들이, 지난해 말 김용균 씨의 죽음에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꼈음에도, 그 슬픔과 분노가 그의 목숨을 앗아간 작업장과 제도 환경을 바꿀 정도로 지속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김 씨가 유품으로 남긴 컵라면은 몇년 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사의 기억과 함께 짓밟힌 청년의 꿈과 희망, 벗어날 길 없는 고달프고 비참한 비정규 노동의 표상이 되었다.

컵라면이 10만개 모여야, 만수르 세트 하나의 가격을 이룬다. 태안화력발전소의 비정규직들은, 2015년부터 컨베이어벨트의 안전 운행을 위해 물청소 장비를 갖춰달라고 요청했다.

회사는 3억 원의 비용 부담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버닝썬의 만수르 세트 3개 값이, 발전소의 끔찍한 죽음의 행렬을 멈추는 비용으로 전환되었다면 어땠을까? 애초에 이것이 더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자원 배분이 아닌가.

▲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故 김용균 씨 유품

원래 인간은 이런 사고를 하는데 어려운 경제 공부가 필요한 동물이 아니다. 하지만, 넓고 깊숙이 자리 잡은 자본과 시장의 논리는 이런 사고와 감정을 집요하게 방해하고 결국 좌절시킨다.

자본과 시장의 논리는, 만수르 세트와 비정규직의 컵라면 유품은 아무 관계가 없고, 또 아무 관계가 없어야 자원이 최적 배분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현실에서 더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자원 배분이 의미하는 것은, 부동산과 금융 불로소득에 대한 누진 중과세, 공기업의 공공성 유지 강화, 위험의 외주화 금지, 파견제와 기간제 등 비정규 악법의 철폐와 규제 등이다.

이런 제도에 찬성한다는 것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전적으로 부정해야 하는 것이 아님에도, 이 시스템의 기득권은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이냐’고 윽박지른다.

 

* 이 내용은, 경기도 정치문화웹진

'나와 세상을 이음'(http://2-um.kr/)에도 게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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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선 kingsj878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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