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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아동센터의 필경사 바틀비

기사승인 2019.08.12  10: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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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의 어려움, 국가가 헤아려야

▲ 김용희 / 하늘샘지역아동센터장

‘필경사 바틀비’는 하먼 멜빌의 ‘모비딕’, ‘빌리 버드’와 함께 멜빌의 3대 걸작으로 3명의 필경사가 등장한다.

키가 작고 숨을 가쁘게 쉴 정도로 뚱뚱한 영국인인 터키는, 정오까지는 가장 빠르고 착실하게 다른 사람들이 필적하기 쉽지 않은 방식으로 많은 일을 하지만, 열두시만 넘으면 불붙듯 흥분하고 번 돈의 대부분은 주로 붉은 잉크에 소비된다.

두 번째로, 엔 니퍼스는 스물 다섯 살 정도의 청년으로 필사를 하다 실수를 저지르면 이를 가는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그의 필사만큼은 빠르고 깔끔하다. 마지막으로 신사처럼 흐트러짐 없지만 주검같은 느낌을 주는 확고하고 침착한 바틀비다.

처음에는 놀라운 분량을 필사하던 그는 낮에는 햇빛 아래, 밤에는 촛불을 밝히고 묵묵히,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필사한다. 유일하게 먹는 게 있다면 사환인 진저 너트가 공급해주는 생강과자이다.

터키도 예외는 아니어서, 추운 아침이면 터키는 작고 납작하고 둥글고 매콤한 그 과자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것으로 단조로운 시간을 보낸다. 변덕스럽거나 불같거나 구제불능으로 쓸쓸하기도 한 그들은 전혀 다른 유형의 인물들로 보이지만, 폴리오(백 자) 당 사 센트라는 필사료를 받으며 그 시간을 견뎌내야하는 그들에게 그건 최소한의 저항이다.

결국 바틀비가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며 필사 뿐만 아니라 원본 대조작업조차 안 하는 편을 선택하면서 그들의 대오는 흐트러졌지만, 그 노동이 결코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빠르고 깔끔한 필사 사이사이 증기처럼 새어나오는 니퍼스의 욕설들로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그것은 그들보다 166년 뒤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이 하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폴리오(백 자) 당 사 센트라는 것도, 눈 돌릴 새 없이 ‘묵묵히,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아이들과 한 모든 일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야 했으므로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는 점도 그렇다.

그런 행위는 평가를 앞둔 지난 7월 초에 절정을 이뤘는데, 저녁 10시가 넘는 건 예사였고 심지어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사무실 불이 꺼진 적도 있다. 센터장, 생활복지사 단 2명이 27명의 아이를 보살피며 일상생활지도는 기본이고 운전과 학습지도, 급식지도, 프로그램 운영에 이르기까지 깨알같은 기록으로 남겨둬야하는 것은 마치 사막의 모래알처럼 많아서 얼마나 많은 것을 기록하는지 헤아려보려다 열 손 가락 넘어갈 무렵 포기해버렸다.

토끼눈처럼 충혈된 눈으로 새벽에 일어나 생강과자 대신 대용량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다시 그 행위를 반복한다.

더 위험한 건 그런 정신으로 운전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란 스타렉스를 타고 이 학교 저 학교 돌며 아이들을 태워오고, 저녁이면 각자의 집으로 데려다준다. 졸음이 쏟아질 때마다 두 눈을 깜박이다 의도하지 않게 부릅뜨기까지 해서 다른 운전자들의 오해를 사기도 한다.

어느 날부터 비누방울처럼 날아가버리는 그 시간이 아까워 초과근무 대장이라는 것을 만들어 적어보았는데, 한 달에 60시간을 넘어간 적도 있어 스스로도 놀랐다.

바틀비를 수용소에 보낸 건물주처럼 우리 건물주도 휴일 저녁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세입자가 염려스러웠는지 어느 날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유심히 쳐다보기까지 한다. 더 늦기 전에 늘 바글대는 아이들을 거느리고 있는 세입자를 내보내야할지 망설이다 십 년 넘게 임대료가 단 한 번도 밀리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며, 마음을 접는 눈치였다.

지역아동센터는 ‘필경사 바틀비’에서 처럼, 메마른 견과 껍질 같은 법률문서를 필사하는 곳이 아니라,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한 영혼을 가진 아이들이 머무는 곳이다.

그 아이들을 보살피는 교사들이 월 60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하며, 화실의 석고처럼 앉아 필사를 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듯 놀란 토끼눈을 한 채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로 노란 차를 몰로 달려나가는 것은, 위험을 넘어 무모해보이기까지 한다.

166년 전의 필경사들도 이런 일이라면 입을 모아 말했을 것이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필경사 바틀비’의 필경사처럼 아이들을 향한 말을 잃은 채 자판만 두드리는 지역아동센터 교사들, 졸음이 쏟아지는 두 눈 부릅뜬 채 도로 위를 달리는 교사들, 우리의 선택지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같은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국가가 헤아려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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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reapg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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