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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의 소유” 한글판

기사승인 2023.03.24  14: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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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자기 생각과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 민주주의 경제, 민주주의 정치를 희망합니다

▲ 이승무

순환경제연구소 소장

(전)노동당 정책위원

지난 2월 28일에 19세기의 독일 사람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 1806-1852)의 유일자와 그의 소유(Der Einzige und sein Eigentum)이란 책이 우리나라에서 번역서로 출간되었습니다.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사회이고, 그 출발점은 서유럽에 있고, 서유럽의 나라들 중에서도 독일, 영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합니다.

현재의 자본주의 문명이 물질적, 정신적으로 완성되던 시대인 19세기에 이 세 나라에서는 지금 우리들이 공부하는 사회과학과 철학, 역사에 관한 중요한 이론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막스 슈티르너는 서유럽 사상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지독한 자기중심주의자이면서 무정부주의자로 대략 그 이름이 알려져 있었고, 그의 책이 한글판으로 나오지도 못했고 별로 중요한 사상가로 소개가 되지도 못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공동체 전체, 우리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개인만 아는 것은 나쁜 놈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동체와 우리, 전체를 드높이는 것은, 종교이든 사상과 이념이든 민족이든 인류 공동체이든 가르쳐지고 찬양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이 나라의 이른바 자주파들도 전혀 개인의 자주성을 내세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거대한 악의 무리인 제국주의, 식민주의 세력에 대한 자주를 내세워 대동단결하자는 대의를 내세워 왔고, 이를 위해 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초개 같이 희생하는 것을 숭고하다고 해 왔다는 것입니다.

사람 자체가 스스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익어가게 하고, 그것을 끄집어내어 말하고, 동지를 규합하고 하는 과정은 무슨 선생님이니 무슨 장군님이니 하는 영웅들의 일대기에 나오는 이야기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귀를 쫑긋 세우고 따라다니고, 쥐어 짜내어지는 착한 대중들, 민중들일 뿐입니다.

그래서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는, 선악의 이분법에서 각각 악과 선을 대표하는 것이 되어 왔습니다.

말하자면 개인주의가 사회 정서에서만이 아니라 지식사회에서도 설 자리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다수가 고등종교이건 사이비종교이건 모든 종교기관에 돈과 시간을 갖다 바치는 충성된 신도로서 착취를 당해 왔다고 말할 수 있고, 민족, 정의, 평화 기타 등등의 어떤 이념을 내세우는 단체에 동원하고 모금하는 데 시간과 돈을 제공하는 “대중”이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해서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별로 자아를 성취한다거나 질적으로 향상된다거나 그런 것은 없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활동가라고 하는 이들은, 자기의 몸과 정신을 소진시키고 갉아 먹어가며 정신없이 활동에 매달리지만, 자아가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힘은 빠져나가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울림을 주기에는 거리가 멀어져 갑니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정서적인 문화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고착된 병폐일 것이라고 짐작하는 편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외부로부터의 주입, 유입, 수입되는 이론, 사상, 물질, 자원, 교리에서 공급을 받고 일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나라의 국경선 밖에서 비행기나 배를 타고 그런 것들이 들어오는 것만이 아니라 어느 집단이나 개인, 도시나 지역도 다 마찬가지로 그 내부보다는 외부에서 뭐가 전해지는 것에 다 촉각을 곤두세우는 구조로 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정보통신기기의 보급과 이용을 위한 시설들, 이에 따른 전화기를 붙들고 사는 생활양식들이 그것을 말해 줍니다.

가르침을 주입시키려는 자들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대중들은 보이스피싱과 거짓 정보에 속아 넘어가기 좋은 밥이 되는 현상들이 뉴스의 큰 소재가 됩니다.

급속한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모든 가치를 지니는 것은 외부에서 내부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되었고 그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은 뭐가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내부에서 배태되는 것이 없고, 내부에서 자라는 것이 없고, 내부에서 열매 맺는 것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을 수밖에 없고 경제적으로는 농경 부문이 점차 없어져 가는 것이 단적인 그 구조변화를 표현합니다.

사회경제 구조 자체가 내부의 순환과 가치창조에 눈을 돌리고, 그래서 자주적인 개인들의 자기 판단력에 기초한 민주주의적인 사회와 경제로 달라지는 것이 순환경제의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회의 모든 숭고한 이념들이 사람들의 삶에서 생겨나서 종합된 것이 될 때 진정한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 외국에서 수입된 책이나 어디서 주입되는 것이어서는 더 이상 이 나라의 정신구조와 사회 자체가 잘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게 됩니다.

막스 슈티르너 책의 한글판의 출간을 환영하면서, 이제는 그만 동원하고, 그만 착취하고, 그만 충성하고 누구나 자기 생각과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 민주주의 경제, 민주주의 정치를 희망합니다.

책 첫머리에 있는 글을 조금은 충격적이고 역겨울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저 개인이 원문에서 번역하여 소개해 봅니다.

 

 

나는 아무것에도 나의 대의를 두지 않았다

무엇이 도대체 내 일이 아니란 말인가!

무엇보다도 선한 대의, 그 다음은 신의 대의, 인류의 대의, 진리, 자유, 인간애, 정의의 대의다.

더 나아가 내 인민, 내 임금, 내 조국의 대의, 마지막으로 정신의 대의와 다른 수천 가지의 대의들까지. 내 대의 만이 내 일이 아니란 것이다.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에게 ‘피!(감탄사)’«

그렇다면 그 대의를 위해 우리가 일하고 헌신하고 의욕을 내어야 할 그 대의의 장본인들은, 자신들의 대의를 가지고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자.

여러분은 신에 대해 많은 근본적인 것을 언명할 줄을 알고, 수천 년 동안 "신성의 깊이를 살피고" 그 마음을 들여다 보았으므로 신이 우리가 섬기도록 부름 받은 "신의 대의"을 어떻게 추구하는지 우리에게 물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또한 주님의 추구하는 일도 숨기지 않는다. 이제 그의 대의는 무엇인가? 우리가 짐작하는 것처럼 그는 타인의 대의를 가지는가, 그는 진리, 사랑이란 대의를 자신의 대의로 삼았는가?

여러분을 격분케 하는 것은 이런 오해이며, 여러분은 우리에게 신의 대의는 확실히 진리와 사랑의 대의이지만 신 자신이 진리와 사랑이기 때문에 이 대의는 그에게 남의 것이라고 불려질 수 없다고 가르쳐 준다.

여러분을 격분케 하는 것은 신이 남의 대의를 자신의 대의로 내세운 가운데서 가련한 벌레 같은 우리와 마찬가지일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다. “신은 그 스스로가 진리가 아니라 해도 진리의 대의를 돌보아야 했다.” 그는 오직 자신의 대의에만 신경을 쓰지만, 그는 모든 것 안의 모든 것이기에 또한 모든 것이 그의 대의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 안의 모든 것이 아니며, 우리의 대의는 아주 작고 형편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고귀한 대의”를 섬겨야 한다. 이제 명확하다. 신은 오직 자기 것만 신경을 쓰고 오직 자신에만 몰두하고, 오직 자기만을 생각하고 자기만을 안중에 둔다. 그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것에 화가 있도다.

그는 더 높은 것을 섬기지 않고 스스로만을 만족시킨다. 그의 대의는 순전히 이기적인 대의다.

우리는 인류의 대의를 우리의 대의로 삼아야 할 것인데 그 인류는 어떠한가?

그들의 대의는 가령 다른 사람의 대의이며 인류는 더 높은 대의를 섬기는가?

아니다, 인류는 자신만을 바라보고, 인류는 인류만을 선양시키려 할 뿐이며, 인류 스스로가 자신의 대의다.

인류가 발전하도록 여러 민족과 개인들이 인류를 섬기는 일에 고생하게 하며, 인류가 필요로 하는 것을 이들이 달성했다면, 이들은 감사를 받기는커녕 역사의 안개 속으로 인류에 의해 내던져진다. 인류의 대의는 순전히 이기적인 대의가 아닌가?

나는 자신의 대의를 우리에게 지정해 주고 싶어하는 누구에게든 그에게는 그 자신이 중요하지 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그 자신의 잘 됨만 중요한 것이지 우리의 잘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에게 보여줄 필요가 좀처럼 없다.

그 나머지 것들도 살펴보라. 진리, 자유, 인류애, 정의는 여러분이 열심을 내어 그것들에 봉사하는 것 말고 다른 무엇을 바라는가?

그것들은 지극히 큰 의무감을 가지고 떠받들어진다면 모두 홀로 보란 듯이 건재한다. 숭고한 애국자들의 수호를 받는 민족을 살펴보라. 그 애국자들은 피흘리는 투쟁에서 또는 굶주림과 궁핍과의 투쟁에서 쓰러져 간다.

그 민족은 그들 사정에 관해 무엇을 묻는가? 그들의 시체들의 거름으로 그 민족은 “번영하는 민족”이 된다! 개인들은 “민족이라는 위대한 대의를 위해” 죽었고, 그 민족은 그들에게 감사의 말 한마디를 보내고 그로부터 이익을 취한다. 나는 이것을 벌이가 되는 이기주의라고 명명한다.

하지만 “자기 백성들”을 위해 아주 사랑이 넘치게 신경을 쓰는 저 술탄을 보라. 그는 순수한 무사(無私) 그 자체가 아니며, 자기 백성을 위해 매시간 자신을 바치지 않는가?

물론 “자기 백성”을 위해서 말이다. 한번 시험 삼아 그대를 그의 것으로 보여주지 말고, 그대의 것으로 보여주어 보라. 그대는 그의 이기주의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

술탄은 자기의 대의를 자기 말고 어느 것에도 두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모든 것 안의 모든 것이며 스스로가 유일자이고 그의 “백성”중 하나가 아니기를 감행한 누구도 용서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웅변적인 예들에서 여러분은 이기주의자가 가장 잘 나간다는 것을 배우고 싶지 않은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로부터 교훈을 얻으며, 저 위대한 이기주의자들을 계속 사심 없이 섬기는 대신 차라리 나 자신이 이기주의자이려고 한다.

신과 인류는 자기들의 대의를 자기들 말고 다른 어느 것에도 두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대의를 마찬가지로 나 자신, 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전부, 유일자인 나에게 둔다.

신이, 인류가 여러분이 확언하듯이 스스로 모든 것 안의 모든 것이기 위해 자신 안에 충분한 내용을 가진다면, 나는 그 점에서 나에게는 훨씬 덜 모자란다는 것, 나는 나의 “허무함”에 관해 아무런 탄식도 할 일이 없으리라고 느낀다.

나는 허무함이란 의미에서 무(無)가 아니며 나 자신이 창조자로서 모든 것을 창조할 원천인 무(無), 창조적인 무다.

전혀 나의 대의가 아닌 어떤 대의이든지 꺼져 버려라. 여러분은 나의 대의가 적어도 “선한 대의”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가? 선하면 어떻고 악하면 어떤가! 나는 물론 스스로 나의 대의이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 둘 다 나에게는 의미가 없다.

신적인 것은 신의 대의이고 인적인 것은 “인간의” 대의다. 나의 대의는 신적인 것도 인적인 것도 아니며, 참된 것, 선한 것, 옳은 것, 자유로운 것 등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것이며,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유일한 것처럼 유일한 것이다.

내게는 아무것도 나보다 높은 것을 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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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무 sngmoo@cyclecono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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