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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츠키의 유물사관

기사승인 2023.06.07  10: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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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무

순환경제연구소 소장

(전)노동당 정책위원

지금 카우츠키의 유물사관(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1927)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카를 카우츠키가 73세 되던 해에 나온 것으로 1700쪽이 넘는 유물사관의 완성판입니다.

잘 알려졌듯이 그는 경제 논리에 따른 자본주의 붕괴론이 잘못된 것으로 보았으며, 농촌경제에 대한 예리한 관찰자인 그는 농업에서 공업에 못지않게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아서 공업의 원재료 구입에 충당되는 불변자본이 그렇게 빠르게 증가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농업은 점차 한계에 부딪쳐 가고 있다는 것이 제이슨 W. 무어에 의해 지적되었습니다. 미래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알 수가 없지만, 어떤 사람의 시각이 정확한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고민한 흔적만큼은 소중한 자료가 됩니다.

우리나라가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우리보다 앞섰다고 하는 서양의 지적인 자산들을 상당히 편파적으로 받아들여서 습득한 결과 카를 카우츠키 같은 사회주의 사상가의 연구 성과들은 학계의 관심사가 되지 못했습니다. 볼셰비즘의 영향 하에 있었던 북쪽에서도 레닌, 스탈린의 체제에 반대했던 그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었겠죠.

지난 2월에 헨릭 그로스만의 저서 <자본주의 체제의 축적 및 붕괴의 법칙>에 대한 한글판 번역자로서 릭 쿤(Rick Kuhn)이라는 영문판 번역자와 온라인 세미나를 하는 과정에서 그 저서에 많이 비판적으로 언급된 카우츠키에 관한 평가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나는 카우츠키가 장기적인 문명의 성쇠를 연구하는 역사가의 눈을 가진 사람으로서 경제학적인 자본주의 붕괴론을 전개한 그로스만과 다른 차원에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서로 보완관계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쿤 교수는 카우츠키의 <유물사관>에서 그는 맑스주의를 버렸다고 하고 자신이 맑스주의자인 입장에서 맑스주의자가 아닌 카우츠키를 긍정적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유물사관>을 한번 잘 읽어보겠다고 말했었습니다.

사실 나는 어느 스승으로부터 맑스주의를 전수받은 사람도 아니고, 나 자신이 맑스주의자라고 내 신념을 고백한 적도 없이 맑스주의자들이나 사회주의자들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혼자서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한 정도이기 때문에 맑스주의의 핵심적인 시각이나 방법론이 무엇이냐,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 하는 것에 별 관심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런 다분히 종교적 성격의 법통은 이 땅에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사상의 역사에서 모셔야 할 스승을 찾으면 찾았지 맑스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그를 숭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카우츠키는 맑스주의의 교황이라고 알려질 정도로 맑스의 사상을 보급하는 데 많은 공헌을 한 자칭 맑스주의자이지만 사실 그는 맑스에게 오류가 없다고 보지 않았고, 역사문제, 민족문제 등에서 맑스가 일으킨 판단착오를 많이 지적했습니다.

카우츠키의 글은 맑스를 구구절절 인용하지 않고 맑스의 기본 개념에서 힌트를 얻어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는 식입니다. 사회과학도 학문이고 과학이라면 카우츠키처럼 그래야 하는 것이지 특정 인물을 신봉하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논의에 대해서는 상대도 하지 않거나 심하게 공격하는 교조적인 태도는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카우츠키는 온건한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할 수 있고, 그의 유물사관은 기계적이거나 교조적이지 않고 상당히 유연하고 역사현상들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과정에서 나온 폭넓은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1700여 쪽이 되는 그의 책은 20세기 초에 19세기의 사회주의자들의 사고와 투쟁의 성과들을 총정리한 내용으로서 중부 유럽의 지식인이 20세기 현대 인류에게 지적 자산으로 남긴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가 노동하는 인간과 자연을 약탈하는 자본주의를 인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인권, 자유의 개념이 희박한 볼셰비즘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고도로 발달한 민주주의로서의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카우츠키의 정치철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가 더 맑스를 충실하게 계승했느냐 누가 더 혁명적이고 래디칼하냐 하는 저차원의 관심은 논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어떤 사회정치적 입장이 우리에게 맞는 옷이냐, 우리의 토양과 우리의 현 실정에서 절실하게 필요하냐가 더 중요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물론, 카우츠키도 독일 정계에서 나치가 출현하는 것을 제대로 예견하여 대비하지 못했고 그 자신이 나치에 쫓겨 피신하는 과정에서 1938년도에 사망했으니 큰 실책을 범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그는 반전 평화주의의 신념이 강했고, 민주주의와 인민들의 교육과 문화의 필요라는 측면에서 민족자결주의의 입장을 가졌습니다. 인민을 국가권력의 필요에 적응케 하는 절대주의의 경향에 반대하고 국가권력을 인민의 필요에 적응케 하는 경향을 중시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역사, 그리고 지금의 현실은 어느 한 사람의 일관되고 통일된 관점에서 완전히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사람들의 치열한 생각과 서로간의 대립과 비판이라는 논의의 장에 들어가서 무엇이 핵심적인 쟁점인지, 다들 동의하는 문제와 의견이 갈라지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서 거기서부터 나 자신의 눈과 머리를 가지고서 관찰과 생각을 해서 판단해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로스만의 잉여가치 과소생산 이론은 현실 경제가 어떤 위치에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지를 가늠해 보는 데 훌륭한 눈을 제공해 주며 인간 사회와 생태환경을 다 포괄하는 범위에서 제이슨 W. 무어도 그런 시각을 갖게 해 줍니다.

그러나 그런 방향이 이론적으로 100% 옳다고 장담할 수 없고 그런 경제, 생태이론 말고도 장구한 역사의 경험과 정치철학과 목표에 대한 의식도 중요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카우츠키는 레닌이 말하는 것처럼 변절자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 아니고 이 땅에 사는 우리에게 상당히 설득력 있는 역사관과 사회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으로서 준거점을 제공해 준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유물사관은 사회과학적으로 역사과정을 설명하는 데서 기본이 되는 경제적 기초에서 출발하는 논리전개와 설명방식이고 유력한 작업가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증주의 역사관이나 마찬가지로 거기에 어떤 철학이 중심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과학적인 설명을 지향하는 것으로서 인간 역사와 사회 현상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종합적으로 개관해 보는 데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머리말 끝부분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옮겨봅니다.

 

 

“유물론적 역사관의 이해는 어느 때보다도 덜 순수한 학술적 사안이다. 이 이해의 확산은 어느 때보다 더 사회주의적 성공의 중대한 현실적 조건이 된다.

내 말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유물론적 역사관을 인정하는 것이 가령 사회민주당 가입의 전제조건이어서는 안 된다. 이 당은 무산계급의 해방투쟁, 일체의 억압과 착취에 맞선 투쟁에 함께 싸우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그가 이 소망을 유물론적으로든 칸트주의적으로든, 아니면 기독교적으로든 그밖의 어떤 식으로든 이론적으로 어떻게 기초를 짓든지 상관 없이 개방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투쟁을 전개하고 승리로 끝낼 가장 유익하고 가장 성공적인 방식은 우리의 확신에 따른다면, 유물론적 역사관이 제공해 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인정될 뿐 아니라 습득이 되고 지혜롭게 이용될 경우에만 그렇다.

가장 위대한 진리라도 이를 기계적으로 자기 생각과 현실 탐구도 없이 답습되거나 적용되는 몇 마디의 격언으로 축소한다면 불행이 넘치게 작용할 수 있다.

나의 책으로 유물론적 역사관에 대한 관심을 더욱 활기차게 만들고 그것이 포괄하는 한아름의 문제들을 알려주고 그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확산하고 그것의 이용에서의 일체의 천편일률성에 대처하는 데 성공하는 것보다 내게 더 다행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노동하는 인류의 해방을 촉진할 과제를 나의 저서에 부여했다. 이 책이 그 위대한 과제에 부응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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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무 sngmoo@cyclecono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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