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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출신 민주인사 5주기 추모제, 잇달아 열려

기사승인 2024.09.25  13: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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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동문 등, “고인들 뜻 받들어 실질적 민주화로 나가자!”

▲ 지난 9월 21일(토) 성대출신 민주인사 고 전경희 선생과 고 김수길 선생 5주기 추모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 : 사)성균관대 민주기념사업회 
▲ 지난 9월 21일(토) 성대출신 민주인사 고 전경희 선생과 고 김수길 선생 5주기 추모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 : 사)성균관대 민주기념사업회 

9월 21일 오전 11시 15분부터 정오 15분까지 분당추모공원 휴(경기도 광주시 오포리 211-49, 지번주소 : 능평동 6-3) 난초묘역 3-506과 2-601에서 성균관대 민주동문회(이하 성민동) 및 (사)성균관대 민주기념사업회(이사장 김태영) 등이 주관한 고 전경희 선생(1961∼2019.09.13) 5주기 추모제와 고 김수길 선생(1953∼2019.09.23.) 5주기 추모제가 각각 약 30분 간격으로 잇달아 열렸다.

그동안 각각 별도로 개최했다가, 성대출신 민주인사 2인이 같은 추모공원 같은 난초묘역 서로 옆 공간인 2∼3구역에 각각 모셔져 있다는 공통점과 5주기라는 상징적 의미가 겹쳤다.

참석자들은 약 30여명에 달했고, 함께 했던 성민동 회원들과 민청학련동지회(상임대표 강창일, 공동대표 최철, 임상우/ 이하 민청) 회원 정윤광, 유인태, 김학민, 이종구, 송운학 등은 이구동성으로 “고인들 뜻을 받들어, 실질적 민주화로 나가자”고 다짐했다.

고 전경희 선생 추모제는 “넉넉한 네 품이 그립다. 경희야, 잘 지내니?”라는 정겨운 주제를 내걸고 김인봉(성대 80학번)이 사회를 맡아 진행했고, 고 김수길 선생 추모제는 “당신이 걸어간 그 발걸음, 잊지 않고 이어가겠습니다”는 주제와 현수막을 내걸고 송운학 민청 이사가 사회를 맡았다.

이들 30여명이 함께 추모한 전경희(성대 화학과, 80학번) 선생은, 생전에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대상자로 확인받았다.

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대표 회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초대 인권위원회 위원장, 범민족대회 공동본부장,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고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고문 등을 지내며,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평생을 바쳤던 조용술 목사의 큰 아들 조성범이 배우자였지만, 부군 역시 약 2년 뒤 별세했다.

▲ 지난 9월 21일(토) 성대출신 민주인사 고 전경희 선생 5주기 추모제에서 진행사회 김인봉이 왼쪽 두 번째 자리에서 발언하고 있다(왼쪽 첫 번째는 송운학 민청 이사) @사진제공 : 사)성균관대 민주기념사업회 

약 30분 시차를 두고 진행된 고 김수길(성대 행정학과, 72학번) 선생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대상 등 확인자명단에 없다.

아마도 본인 성품상 확인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권정호 변호사(성대 78학번)가 낭독한 고인약력에 따르면,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룬 뒤 노동현장에 취업하여 거의 대부분 한 평생을 현장노동자로 살았다.

이날 김수길 선생 추모제에서 정윤광, 유인태, 김학민, 이종구 등은 각각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뛰어난 동지”, “딸깍발이 조선선비 정신으로 평생을 살다 간, 모범적인 동지”, “현장노동자 생활이 몸에 밴 동지”, “원칙적 비타협주의자” 등으로 고인을 회고했다.

김인봉(성대 80학번)은 “서울의 봄 당시, 동대문경찰서에 약 40일간 함께 구금되었다. 당시 나눈 대화가 힘들 때마다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준 좌우명이 되어 비타협적인 원칙주의자가 되고자 평생 동안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 지난 9월 21일(토) 광주시 오포리에 있는 분당추모공원 휴에서 고 김수길 민청학련 회원 겸 성대출신 민주인사 5주기 추모제에서 여동생 등 참석자들이 제물을 놓고 있다. @사진제공 : 사)성균관대 민주기념사업회 

강선미(성대 79학번) 역시 “광민사(현 동녘사) 이태복 사장이 긴 세월 동안 투옥되었을 당시 만들어진 편집기획자문위에 동참했던 김수길 선배가 다방면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발휘하여 그 누구도 논박하기 어려운 주장을 펼쳐, 출판사 유지와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면서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밖에도 이진복(성대 75학번)은 “성대 학회와 학생운동 등에 있어서 성대 사회문제연구회는 근원적 뿌리가 되는 조직”이라고 그 긍정적인 역할 또는 영향 등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그 학회를 만들 때, 김수길 선배가 탁월한 지도력 등을 보여주었다”고 회고했다.

이날 잇달아 개최된 2개 추모제 참석자들은 한두 사람만 제외하면, 거의 같았다. 즉, 고 전경희 선생과 동기동창인 성균관대 80학번 등 80년대 동문 약 13명과 고 김수길 선생과 함께 유신체제에 저항했던 권영근, 최영삼, 이진복, 이현배, 권정호, 임경석, 강은미 등 70년대 성대 동문 약 10명 그리고 아들 내외와 어린 손주 및 친오빠 등 가족 4인 등 약 25명이었다.

이날 새벽 일찍 저 먼 부산에서 출발했지만,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정오까지 내린 폭우 및 이로 인해, 곳곳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뒤처리 등으로 다소 늦게 도착한 고 김수길 선생 여동생은 “철저한 감시 등으로 오빠는 노동운동에 기여하겠다는 큰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미혼으로 후손도 남기지 못한 채 홀연히 이승을 떠났다”면서 슬픔과 아픔 등을 억눌렀다.

특히, “서울의 봄 당시 오빠와 가족 사이에 연락이 두절되자, 성격상 틀림없이 오빠가 광주에 내려가서 큰 변을 당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큰 오빠께서 광주를 찾아가 시신을 덮어놓은 볏가마니 등을 일일이 벗겨가며 신원을 확인하려고 시도했다”면서 “집에 되돌아온 큰 오빠는 <끔찍하고도 참혹한 상처로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용모 등이 훼손되어 끝까지 모든 시신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고 자신을 탓하며 어린애처럼 한동안 통곡했다”고 울먹이며 증언한 뒤, “둘째 오빠 유해를 이천민주화운동 기념 공원으로 이장하고 싶다”면서 주변 도움을 요청했다.

한편, 민청은 “고 김수길 선생 등과 같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 사라져 민청동지 약전 집필 및 약전모음 편찬사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그런 결정이 내려진다면, 성민동과 그 회원들은 물론 모든 시민사회가 적극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밖에도 민청은 “이학영 부의장실,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 협의회 (이하 민교협) 등과 함께 오는 10월 21일(월)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유신붕괴 45년, 한국 민주주의의 도전과 과제’를 주제로 하는 대토론회를 공동주최·주관하기로 합의했다”면서 “모든 시민사회가 분담금 납부 등 특별한 의무 없이 공동주최단체가 될 수 있다”면서 참석을 요청했다.

 

다음은, 민청학련동지회 송운학 이사 작성해 민청학련동지회에 보고한 <고 김수길 동지 5주기 추모제 참석 후기>이다.

 

 

 

민청학련동지회에 보고한 <고 김수길 동지 5주기 추모제 참석 후기>

                                   

                               2024. 9. 22 민청학련동지회 이사 송운학

어제 토요일(9.21) 오전 11시 15분부터 정오 15분까지 분당추모공원 휴(경기도 광주시 오포리 211-49, 지번주소 : 능평동 6-3)에서 성균관대민주동문회(이하 성민동) 및 성균관대 민주기념사업회(이사장 김태영)가 주관한 성대출신 민주인사 고 전경희 동지(1961∼2019.09.13) 5주기 추모제와 고 김수길 동지(1953∼2019.09.23.) 5주기 추모제가 각각 약 30분 간격을 두고 잇달아 열렸습니다.

추모장소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하 민기사)가 보내온 살아있는 꽃으로 만든 조화가 각각 하나씩 놓아져 있었고, 김수길(성대 72학번) 동지 앞에는 민청학련동지회(이하 우리모임)가 보내온 보다 큰 조화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같은 해 10일 먼저 이승을 떠난 성대 동문 고 전경희(성대 80) 동지 추모제와 겹쳐 예년과 달리 참석자가 약 30명에 달하는 등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예컨대, 고 전경희 동지와 매우 친했다는 김인봉을 비롯한 성균관대 80학번 등 80년대 동문 약 13명과 고 김수길 선생과 함께 유신체제에 저항한 권영근, 최영삼, 이진복, 이현배, 권정호, 임경석, 강은미 등 70년대 성대 동문 약 7명 등 성대출신이 약 20명이었습니다. 특히, 고 전경희 선생의 아들 내외(조형준과 그 배우자) 및 어린 손주 그리고 친오빠(성대 79학번 전준현) 등 가족 4인도 동참했습니다.

우리모임 회원은 (이하 존칭 생략) 정윤광, 유인태, 김학민, 이종구, 송운학 등 5명이었고, 고 전경희(성대 80) 추모제에도 동참했습니다. 다만, 새벽같이 저 먼 부산에서 출발했던 고 김수길 동지 여동생은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정오 무렵까지 내린 비와 이로 인해 곳곳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뒤처리 등 교통체증으로 예정시간보다 다소 늦게 도착하여 친오빠인 고 김수길 동지 추모제에만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특기사항은 성민동 등이 제작, 운반, 설치한 현수막 둘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회고담 등을 나누다보니 고 전경희 동지는 물론 고 김수길 동지 등 성대 출신 민주인사에 대해 우리가 너무나도 무심했고, 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김수길 동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로서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예컨대, 고 전경희 동지는 생전에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대상자로 확인을 받았습니다. 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대표 회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초대 인권위원회 위원장, 범민족대회 공동본부장,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고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고문 등을 지내며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평생을 바쳤던 조용술 목사의 큰 아들 조성범이 배우자였지만, 부군 역시 약 2년 뒤 별세했습니다.

이에 비해 김수길 동지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등 대상자 명단에 없습니다. 아마도 오늘 일요일(9.22) 새벽 별세했던 장기표 선배처럼 확인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럼에도 서울의 봄 당시 동대문경찰서에 약 40일간 구금되었고, 함께 구금된 김인봉 후배는 당시 나눈 대화가 좌우명이 되어 비타협적인 원칙주의자가 되고자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또, 강선미 후배가 회고한 사실에 따르면, 김수길 동지는 그 당시 광민사(현 동녘사) 이태복 사장이 긴 세월 동안 투옥되었을 때 만들어진 편집기획자문위에 동참하여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을 발휘하여 그 누구도 논박하기 어려운 주장을 펼쳐 출판사 유지와 발전 등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입니다.

그밖에도 이진복 후배는 성대 사회문제연구회를 만들 때 김수길 동지가 보여준 지도력 등에 대해 회고했고, 그 학회가 성대 학회와 학생운동 등에 미친 긍정적인 역할 또는 영향에 대해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처럼 뛰어난 능력과 재능을 가진 김수길 동지가 후손도 남기지 못한 채 이승을 떠난 것이 몹시 그립고 아쉽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임 회원님들과 주변 지인들 기억력이 감퇴하기 전에 불우한 시절을 보내다가 불운하게 먼저 세상을 뜬 김수길, 심기화, 강구철, 정문화 등 동지님들 약전을 각각 편찬하여 약전모음집을 발간함은 물론 각각의 생애에 대한 자기구술 또는 구충서 동지 등의 경우에는 주변지인 증언채록 작업을 서둘렀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거의 대부분 고인 동지들은 개인별로 기념사업회가 각각 만들어지지 못한 상태입니다. 5주기마다 또는 적어도 10주기마다 함께 묘지로 찾아가 추모행사를 개최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어제 김수길 동지 가족(여동생 김은선)은 “서울의 봄 당시 가족과의 연락이 서로 두절되자 그 성격상 틀림없이 광주에 가서 변을 당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큰 오빠께서 광주로 가서 시신을 덮어놓은 볏가마니 등을 일일이 벗겨가며 신원을 확인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큰 오빠는 ‘참혹한 상처로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용모 등이 훼손되어 끝까지 모든 시신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자책하면서 한동안 어린아이처럼 통곡하셨다”고 증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제 김수길 동지 가족(여동생 김은선)이 고인 유해를 이천민주추모공원으로 이장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사무처가 민기사 등에 문의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조사해서 차기 이사회에 보고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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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선 kingsj878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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