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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후 첫 번째 과제는 선거제도 개혁이다

기사승인 2017.06.14  13:5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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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의 입장에서 왜 필요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

▲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대통령 탄핵과 조기대선이라는 사상 초유의 일을 겪었지만, 과연 대한민국은 바뀔 수 있을까? 대통령 한 사람을 바꾼다고 해도 변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지금은 시스템을 바꿔야 할 때이다.

국회의 상황을 보면,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작년 12월 대통령 탄핵소추결의가 이뤄진 후에, 국회의 각 정당들은 재벌개혁, 검찰개혁을 얘기했지만 입법은 물 건너갔다. 청년 63만여 명이 5월 9일 대선에서 투표할 수 있는지가 걸려있었던 만 18세 선거권 연령 입법도 물 건너갔다.

노동자, 농민, 영세자영업자들의 삶의 문제들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뭐 하나도 분명하게 진행되는 것이 없다. 국회는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새 정권이 출범했지만, 인사청문회로 시간을 보내다보면 6월이 훌쩍 지나갈 것이고, 하반기에도 지루한 공방을 하다보면 내년 6월 지방선거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이대로라면 변할 것이 없다.

이것이 대통령의 탄핵과 조기대선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답답함을 느끼는 이유이다. 결국 대통령 한 사람 바꾸자고 촛불을 든 것이 아니라면, 지금은 정치 판 자체를 바꿔야 할 때이다.

지금 국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권력’을 아주 나쁘게 행사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국민의 위임을 배신하고, 기득권에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재벌, 검찰 등 온갖 기득권세력들의 힘은 그대로 유지된다. 국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가계부채, 청년부채, 불안정한 고용과 낮은 임금, 미세먼지, 노동자들과 농민들, 영세자영업자들의 삶은 개선되지 않는다. 지금 국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민중들의 삶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 이후에는 국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국회를 해산하는 수준으로 개혁을 해야 한다. 그 핵심은 국회가 끝내 하지 않으려는, 선거제도개혁이고, 국회개혁, 정당개혁이다. 이것을 이뤄내야만 촛불 시민혁명은 완성될 수 있다.

선거제도 개혁은 다른 모든 개혁을 위한 첫 단추이다.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정치구조를 바꿀 수 있고, 각 정당과 정치인들의 행태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경험들도 선거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선거제도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다.

왜 선거제도가 노동자들에게 중요한가?

1980년대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던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정권이 있었다. 마거릿 대처는 1979년부터 1980년까지 12년동안 집권하며 노조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민영화를 추진하며, 자본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가 12년동안 집권하고 나서 퇴임한 1990년 영국의 아동 중 28%가 빈곤선 아래에 있었다. 대처의 보수당 정부 집권시기동안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 계수는 1979년 0.25에서 1990년 0.34로 악화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은 1979년부터 1990년까지 단 한번도 선거에서 50% 이상의 지지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역구에서 1등을 한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는 영국의 지역구 1위대표제(소선거구제) 선거제도 덕분에 보수당은 40%대만 득표하고도 늘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획득했고, 이것은 영국의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재앙이 되었다.

이런 영국의 사례는 선거제도가 노동자들의 삶에, 그리고 시민들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최소한 정당이 얻은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도였다면, 대처가 집권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노동자들와 시민들의 삶을 악화시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영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소선거구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20세기 초반에 보통선거권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지역구 1위 대표제 중심의 선거제도를 택한 국가들이 있었고, 정당득표율대로 국회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도(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한 국가들이 있었다. 전자에 해당하는 국가들이 영국, 미국, 캐나다같은 국가들이었다. 그리고 후자에 해당하는 국가들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국가들이었다.

1백년이 지난 지금 두 선거제도중 어느 선거제도가 더 나은 제도인지는 이미 판가름이 났다. 지역구 1위 대표제를 택한 국가들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영국, 캐나다 등의 국가가 그렇다. 캐나다에서는 현 총리가 2015년 총선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기도 했다.

그런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했던 국가들은 대체로 그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더 민주적인 제도라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노동정치라는 측면에서 봐도 그렇다. 노동자들을 대표한다는 정당이 만들어져도, 지역구 1위 대표제 국가에서는 그 정체성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영국같은 국가에서도 ‘노동당’이라고 하는 노동자들을 대표하겠다는 정당이 만들어졌지만, 지역구에서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서는 자기 정체성을 희석화시키게 되는 상황이 벌어져 왔다. 미국의 경우에는 진보적인 성향의 정당들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라졌거나 미미한 영향력만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국회는 철저하게 거대 양당(공화당, 민주당)으로 채워져 있다.

반면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한 국가에서는 사회민주당, 좌파당같은 정당이 비교적 자기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정치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7,8월 노동자대투쟁의 결과 일정한 진전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끊임없이 그 성과들이 위협받고 후퇴해 왔다. 국회구성을 보면, 거대 기득권 정당들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다.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정당은 국회에 들어가도 원내교섭단체조차 꾸릴 수 없었다.

만약, 10%득표를 하면 300석 중 30석을 보장받는 선거제도였다면 한국의 진보정당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과거 10% 이상 득표율을 보였던 민주노동당은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04년 총선에서 13.3%를 득표했던 민주노동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제도가 도입되었더라면, 40석 내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랬다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농민의 정치적 대표성이 이렇게 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대의민주주의로만 정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접·참여민주주의와 ‘거리의 정치’도 중요하다. 그러나 선거를 하는 이상, 선거제도가 미치는 영향은 결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의 국면에서 노동운동이 주장해야 할 정치개혁의 핵심은 선거제도 개혁일 수밖에 없다.

표심을 왜곡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의 현실

그동안 거대정당이 단독으로 국회 과반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표심(민심)을 왜곡하는 선거제도 덕분이었다.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37.5%의 지지를 받았는데 국회에서는 300석 중 153석을 차지했다. 그래서 4대강 사업예산을 강행처리할 수 있었다.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42.8%의 지지를 받았는데 과반수가 넘는 152석을 차지했다. 당시에 자유선진당까지 합쳐도, 새누리당+자유선진당의 정당득표율은 50%에 미치지 못했고, 야당들이 더 많은 표를 받았다. 만약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도였다면, 2012년 총선 때 이미 여소야대가 되었어야 맞다. 그랬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국정을 농단하고 비리를 저지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역구에서 30%를 얻든, 40%를 얻든, 1등만 하면 당선되는 선거제도로 300명 중 253명을 뽑으면, 표심 왜곡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도 ‘비례대표’란 단어는 존재한다. 전체 300명의 국회의원 중에 47명을 비례대표로 뽑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이비 비례대표제라고 할 수 있다.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전체 의회 의석을 배분하기 위해 발명된 제도이다. 300명 전체를 정당득표율대로 배분해야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인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하고 있는 비례대표제는 300명 중에 겨우 47명만을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하기 때문에 그런 효과를 전혀 얻지 못한다.

한편, 현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표심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국회 구성에서 세대대표성, 계급·계층대표성 등이 완전히 깨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통계를 뽑아보면, 대한민국 국회의 구성은 매우 왜곡된 상태이다. 국민들의 평균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먼 국회가 되었다. 국회의원 평균재산이 40억 원이 넘는다. 여성국회의원 비율은 17%로, 세계평균인 23.0%보다도 더 낮다(2016년 기준).

20대 국회의원 당선자의 평균연령은 55.5세였다. 국회의원 평균연령이 45세 이하인 핀란드같은 나라보다는 평균연령이 10세 이상 높다. 게다가 2030세대 국회의원이 3명뿐이다. 세계평균인 13.52%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반면 50대,60대 비중은 훨씬 높다.

대한민국 국회는 다양한 계급.계층을 대변하지도 못한다. 대한민국 국회에 농민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국회의원은 1명이고, 노동자를 대표할 수 있는 국회의원도 손에 꼽을 정도이다. 영세자영업자를 대표할 수 있는 국회의원, 장애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국회의원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국회 구성이 이렇게 된 것은 선거제도 때문이다. 지역구 소선거구제를 중심으로 한 선거제도에서, 평범한 사람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거대정당에 들어가 당선 가능한 지역구에서 공천을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국회구성을 바꾸는 방법은 선거제도 개혁뿐이다.

부패 없고, 삶의 질이 높은 국가들을 보라

어떤 선거제도를 택하느냐는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세계적으로 삶의 질이 높고 복지국가로 불리는 나라들은 대부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2015년 부패인식지수 조사에서 1~7등까지 한 국가들을 보더라도, 덴마크(1위), 핀란드(2위), 스웨덴(3위), 뉴질랜드(4위), 네덜란드(5위), 노르웨이(공동5위), 스위스(7위)이다.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이 배분되는 선거 제도(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이 배분되면 자연스럽게 다당제 구조가 형성된다. 세계에서 가장 부패 없는 국가인 덴마크는 13개나 되는 원내 정당이 국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 정당이 얻을 수 있는 최고 득표율 수준은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특정한 정당이 독주를 하거나, 특정한 정치인이 권력을 마구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최고권력자인 총리라고 하더라도 다른 정당들의 협력이 없으면 정권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순실의 숙주가 되는 '박근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최순실 예방법’은 선거제도 개혁일 수밖에 없다.

노동과 선거제도의 연관관계

선거제도는 노동자들의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아래의 몇 가지 지표들만 살펴보더라도, 노동과 선거제도간의 연관관계는 쉽게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노조조직률은 감소추세에 있지만, 국가별로 편차는 크게 나타난다. 여전히 노조조직률이 50%를 넘는 국가도 있다. 예를 들면, 덴마크 66.8%(2013년), 스웨덴 67.3%(2014년), 핀란드 69.0%(2013년), 벨기에 55.1%(2013년), 아이슬란드 86.4%(2014년), 노르웨이 52.1%(2013년)처럼 노조조직률이 높은 국가들도 있다. 이런 국가들의 공통점은 모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나라의 정치가 노동친화적인 정치이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당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국회 내에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당들(대표적으로 사회민주당같은)이 존재하고, 이 정당들이 국회 내에서 상당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다른 지표들을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연간노동시간이 가장 적은 나라를 꼽는다면, 독일 1,371시간(2015년기준, 이하 같음), 네덜란드 1,419시간, 노르웨이 1,424시간, 덴마크 1,457시간이다. 이 나라들은 모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거제도로 갖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에 저임금노동자 비율이 25.1%(2012년 기준)로, OECD 평균 16.3%를 훨씬 웃도는 수치를 보이고 있다. 우리보다 저임금 근로자 비율이 높은 국가는 25.3%를 기록한 미국이었다. 미국은 대표적인 소선거구제 국가로,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다. 반면에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가장 낮은 국가는 벨기에로 3.4%에 불과하다(2015년 기준). 벨기에 역시 ‘연동형 비례대표제’ 국가이다. 남성과 여성간의 임금 차이가 제일 적은 나라도 벨기에였다. 

대체로 소선거구제 국가에서는 자연스럽게 양당제 구조가 형성되고(뒤베르제의 법칙), 거대 양당은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데 소극적이고 자본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한 국가들은 자연스럽게 다당제 구조가 형성되고,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당도 유력한 정당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리고 연립정부 구성을 통해서 노동자들의 입장이 현실정책으로 입안될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선거제도 개혁으로 신자유주의 모범국가에서 벗어난 뉴질랜드

1993년 선거제도 개혁을 한 뉴질랜드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많다. 뉴질랜드는 단순다수 소선거구제로 선거를 치러온 나라이다. 그런데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이 불일치하는 문제 때문에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범국민적으로 형성되었다.

게다가 1980년대 후반에 뉴질랜드의 거대 양당 중 하나였던 노동당이 신자유주의 노선을 택하면서, 노동운동, 시민운동, 진보정당들도 선거제도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정치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신자유주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운동의 결과 여론이 형성되었고, 기득권의 저항 때문에 국민투표까지 거쳐서 드디어 선거제도를 바꿀 수 있었다. 1993년 11월 실시된 국민투표에서는 유권자의 83%가 투표했으며, 53.9%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46.1%가 기존의 상대다수 소선거구제를 선택했다. 이로써 3년 뒤인 1996년 10월 새로운 선거제도를 적용한 첫 번째 선거가 실시된다.

1996년에 치러진 총선에서 뉴질랜드는 양당제에서 다당제로 전환하게 된다.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한 결과, 제1당의 위치를 차지한 국민당은 33.87%를 얻었고, 120석 중에 44석을 차지한다. 단독으로는 집권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국민당은 17석을 차지한 뉴질랜드 제일당(Newzealand First)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된다.

뉴질랜드는 3년을 주기로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그 다음 선거는 1999년에 있었다. 1999년에는 더 큰 변화가 일어난다. 노동당이 제1당이 된다. 그러나 노동당은 120석 중에 49석을 차지했을 뿐이었다. 바뀐 선거제도 덕분이다. 그래서 노동당은 동맹당을 비롯한 소수정당들과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뉴질랜드의 진보정당이던 동맹당은 연립정부 구성의 조건으로 진보적인 정책을 채택할 것을 요구했고, 이것은 받아들여졌다.

최저임금이 인상되었고, 소득세 최고세율을 33%에서 39%로 올리는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가 단행되었다. 공공주택 임대사업이 개선되었고, 민영화되었던 산재보험이 국유화되었다. 노조의 설립을 장려하고 노조의 지위를 강화하는 고용관계법이 제정되었다. 그에 따라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올라갔고, 고용안정성도 증대되었다. 2004년에는 가족수당 제도가 도입되어, 어린 자녀가 있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시작했다.(최태욱, 『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를 말하다』, 책세상, 2014, 321-322쪽)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잘못 가고 있던 방향이 어느 정도는 회복된 것이었다. 이처럼 정치시스템의 변화는 우리들의 삶을 개선할 수도 있고, 악화시킬 수도 있다.
뉴질랜드는 이제 완전한 다당제 국가로 전환했다. 평균 2.4개에 불과했던 원내정당의 숫자가 7-8개 수준으로 늘어났다. 이런 뉴질랜드의 사례는 대한민국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제는 대한민국도 뉴질랜드처럼 바꿔야 한다.

개헌보다 선거제도 개혁이 우선이다.

국회에서 개헌특위가 운영 중에 있지만, 개헌보다 선거제도 개혁이 우선이다. 선거제도 개혁이 뒷받침되지 않는 권력구조 개편은 개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앞에서 언급했던 영국의 사례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영국은 의원내각제 국가이지만, 선거제도가 소선거구제이기 때문에, 거대정당이 의회에서 단독과반수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경우에 총리(수상)은 대통령에 못지않은 권력을 행사하는 ‘선출된 독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영국의 경험이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도 대한민국처럼 지역구 소선거구제로 다수의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일부 비례대표 의원을 덧붙이는 방식(병립형)이다. 일본의 경우에도 아베 총리가 제왕적으로 군림하며 장기집권의 길을 가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선거제도를 유지한 상태에서 권력구조를 국회중심으로 개편하는 것(의원내각제라고 하든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라고 하든)은 막아야 한다. 그리고 국회에 대해 ‘선 선거제도 개혁, 후 개헌’의 과정을 밟도록 요구해야 한다. 개헌의 내용도 권력구조 개편만이 아니라, 직접·참여민주주의 확대, 지방분권 등의 내용이 담기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

결선투표제와 선거권/피선거권, 정치적 자유 확대 등

한편 국회의원 선거제도 외에도 대통령/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결선투표제, 선거권/피선거권 연령 하향조정, 유권자 표현의 자유 확대, 교사/공무원의 정치적 권리 보장 등 정치제도 개혁의 과제들은 쌓여 있다.

대통령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국가들은 대체로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고 있다. 대한민국과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가 된 중남미의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도 그렇고, 유럽의 핀란드,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도 대통령을 결선투표제로 선출하고 있다.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소수정당들도 1차 투표에서는 맘놓고 후보를 낼 수 있고 유권자들도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2차 투표 이전에 정당간의 협상을 통해서 소수정당도 정권에 참여하거나 정책을 반영시킬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극단적인 후보가 당선되는 사태도 막을 수 있다.

4월 24일 치러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르펜 후보가 지지율 1,2위를 다퉜지만, 아무도 르펜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바로 결선투표제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대한민국처럼 결선투표를 하지 않고, 그냥 1등을 하면 당선되는 선거제도라면 프랑스에서 극우대통령이 탄생할 수도 있었지만, 프랑스는 결선투표제가 있으므로, 2차 투표에서 극우정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여타 정당의 지지자들이 극우정당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결집할 것이기 때문이다. 2016년 오스트리아 대통령선거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1차 투표에서는 극우정당 후보가 1등을 차지했지만, 결선투표를 통해 녹색당 대표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장도 1인을 선출하여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므로 결선투표제가 필요하다. 투표비용 등이 우려된다면 런던시장선거에서 도입하고 있는 보완투표제(Supplementary Vote)도 검토해볼 수 있다.

런던시장 선거는 결선투표제와 유사하지만, 1차투표와 2차투표를 한번에 치르는 방식으로 한다. 이것은 2000년에 런던시장 선거가 부활하면서 도입한 새로운 제도이다. 보완투표제에서는 유권자가 제1선호와 제2선호를 표시하는 방식으로 투표를 한다. 그리고 첫 번째 계산에서 제1선호로 표시된 표의 과반수를 획득한 후보가 없다면, 1,2위 후보만 남겨두고 나머지 후보들은 제거한다.

그리고 제거된 후보가 얻은 투표용지를 그 용지에 2순위로 표시된 후보에게 각각 이양한다. 이것은 같은 날에 1차투표와 2차투표를 한꺼번에 실시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낳는다.

<그림1> 영국 런던 시장 투표용지

▲ 영국 런던시장 투표 용지

한편 만19세로 되어 있는 선거권 연령을 만18세로 낮추고, 더 나아가 만16세로 낮추는 것도 과제이다. 전 세계 147개국이 만18세 이하로 선거권 연령을 규정하고 있고, 오스트리아같은 국가는 2007년 만16세로 선거권 연령을 낮췄다.

현재 만25세로 되어 있는 피선거권 연령도 낮춰야 한다. 선거권연령과 동일하게 규정하는 것이 옳다.

유권자들의 표현의 자유도 확대되어야 한다. 현행 공직선거법 하에서는 선거에 나선 후보자 또는 정당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개진이 선거관리위원회와 경찰, 검찰의 단속이 되고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실정이다. 이는 정치적 의사표현이라는 주권자의 중대한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부적격 후보를 검증하거나 걸러내기 위한 사회적 논의 기회를 봉쇄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 180일 전부터 선거와 관련된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제약하는 공직선거법 93조1항 등의 독소 조항을 폐지 또는 개정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사, 공무원, 공공기관, 협동조합 노동자들의 정치적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 교사와 공무원에 대해 정당가입, 선거운동참여 뿐만 아니라 정치적 표현의 자유조차도 박탈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정치선진국의 경우 교사, 공무원이 정치적 권리를 누리고 있고, 그런 국가일수록 오히려 민주주의가 잘 이뤄지고 있다. 공공기관, 협동조합 노동자들의 정치적 권리도 온전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어떻게 운동을 할 것인가?

선거제도 개혁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 조건은 그 어느 때보다 좋다고 할 수 있다. 촛불민심이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 내에서는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이 없어서, 특정 정당의 반대로 인해 개혁이 불가능해지는 과거의 같은 상황은 아니다. 그리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2015년 2월에 독일식에 가까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라는 의견을 냈다. 중앙선관위가 이런 의견을 냈기 때문에, 보수세력도 개혁에 반대할 명분이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상황이 녹녹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지난 1월부터 200여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민의를 반영하는 선거법 개혁 공동행동>을 만들어 활동해 왔다.  1) 만18세 선거권과 유권자 표현의 자유 보장 2) 국회의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지방의회 선거제도 개선 3) 대통령지방자치단체장 결선투표제 도입을 3대 선거법 개혁과제로 선정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한 활동을 해서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후보로부터는 서명으로 3개 과제에 모두 찬성한다는 답변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판은 대선이후에 벌어질 수밖에 없다. 선거제도 개혁은 어쨌든 국회에서 법률이 통과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시킨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다. 그래서 시민들과 노동자들의 관심과 여론형성이 중요하다. 

노동운동, 시민사회운동이 힘을 모아야 하고, 대중조직의 경우 자기 조직내부에서 이 문제를 교육하고 홍보하며, 대중행동을 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

그리고 지역별로도 움직일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자기 지역구 국회의원은 자기 지역에서 맡는 개념으로 지역촛불들이 힘이 선거제도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역의 경우에는 내년 6월에 예정된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므로, 지방선거제도 개혁도 함께 다룰 필요가 있다. 결국 지방의회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높이고, 지방자치단체장부터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자는 것이 핵심이 될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서도, 국회개혁, 정당개혁을 함께 이슈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국민들 마음속에 있는 ‘여의도 정치판을 크게 바꿔야 한다’는 열망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기득권 정당/정치인들을 흔들고, 이들이 선거제도 개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정치개혁 공동행동>을 구성하기로 하고 활동에 들어간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비정규노동운동이 함께 하고, 참여연대, 민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YMCA전국연맹 등 전국과 지역의 주요시민단체들도 함께 하고 있다.

1차적으로 국회에 선거제도 개혁을 포함한 정치제도 개혁문제를 다룰 정치개혁특위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개헌과 맞물려서도 선거법 개혁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므로, 개헌특위만 운영할 것이 아니라 ‘정치개혁특위’를 운영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구체적인 입법과정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관련해서는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이 이슈가 될 것이다. 그러나 특권을 없앤다면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해 국민들의 동의를 얻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현행 253(지역구) : 47(비례)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 숫자를 100명 이상으로 늘리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난관은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혁없이 노동자, 농민, 영세자영업자,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정치는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반드시 선거제도 개혁을 관철시켜내야 한다. 길이 없다면 길을 만들어야 한다.

<지방선거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현재의 지방의회 선거제도는 국회의원 선거와 마찬가지로,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이 일치하지 않고, 대량의 사표가 발생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광역의회(17개 시.도의회)는 90%가량의 의원을 지역구에서 1등하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로 뽑고 10% 정도의 비례대표 의원을 덧붙이는 방식이다.

그래서 광역의회는 국회보다도 더 표의 등가성이 깨어지고, 특정 정당이 의회 내에서 90%이상을 차지하는 사례까지 발생해 왔다.

실제로 2014년 지방선거만 하더라도 새누리당이 50% 대의 득표율로 울산광역시의회에서 90%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기도 했다. 반대로 전라남도의회의 경우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이 67.14%의 득표율로 89%가 넘는 의석을 차지해서 득표율에 비해 과다한 의석을 획득했다.

경기도의회의 경우에도 선거때마다 표의 등가성은 깨어졌고, 특정 정당이 의석을 싹쓸이하다시피 하는 현상이 반복되어 왔다. 가장 최악의 선거는 2006년에 치러진 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였다. 당시에 경기도의회는 119석중에 한나라당이 115석을 싹쓸이했고, 전 지역구를 휩쓸었다. 2010년과 2014년 선거에서는 반대편에 있는 정당이 도의회를 장악했지만, 역시 득표율과 의석비율의 비례성은 깨진 상황이다.

기초의회(226개 시.군.자치구의회)의 경우에는 지역구 1개 선거구에서 2-4인을 뽑고, 10% 정도의 비례대표 의원을 덧붙이는 방식이다. 그러나 4인선거구는 거의 없고, 3인선거구도 약간 존재하며, 대부분이 2인선거구로 되어 있어서, 거대 두 정당이 의석을 독점하거나 과점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그에 따라 기초의회의 경우에도 광역의회보다는 덜하나, 사표가 많이 발생하고 다양한 소수정당의 의회 진출이 봉쇄되어 있으며, 득표율과 의석비율의 불일치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치선진국의 경우에는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표의 등가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를 위한 선거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예를 들면 독일의 경우에는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득표율과 의석비율을 일치시키는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다.

대안은 간단하다. 지방의회 선거도 비례성을 높이는 선거제도로 전환하는 것이 합당하다. 지역구 선거와 정당투표를 1인2표 방식으로 지금처럼 하되, 지방의회 전체 의석을 정당(아래에서 언급한 주민정당 포함)별로 할당하고, 각 정당들은 할당받은 의석내에서 지역구 당선자부터 채우고, 모자라는 부분을 비례대표로 채우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에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로 전환하자는 것이 오래전부터 논의되고 있는데 기득권세력의 저항 때문에 바뀌지 않고 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자치의회, 웨일즈 자치의회, 런던시의회 등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를 하고 있다. 런던시의회는 2000년부터 이 방식으로 선거를 하고 있다. 총 25석의 의원을 뽑는데, 14명은 지역구 선거로 뽑고, 11명은 비례대표로 뽑는 것이다. 그런데 전체 의석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일단 할당을 하고, 각 정당은 자기가 할당받은 의석 내에서 지역구 당선자부터 인정하고, 나머지를 비례대표로 채우는 방식이다. 
2016년에 있었던 런던광역의회 결과를 보면, 이 방식을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래의 표에서 보는 것처럼, 각 정당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할당받고, 할당받은 의석 범위 내에서 지역구 당선자부터 채우고, 남는 부분을 비례대표로 채우는 것이다.

예를 들면, 노동당은 40.3%를 얻어 25석 중에 12석을 할당받았는데, 노동당의 지역구 당선자가 9명이었으므로, 모자라는 3명을 비례대표로 채우는 것이다. 녹색당의 경우에는 8.0%를 얻어 2석을 할당받았는데, 지역구 당선자가 없으므로 비례대표로만 2석을 채우는 것이다.(‘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특정한 정당이 할당받은 의석보다 지역구 당선자가 많은 경우가 간혹 발생할 수 있다. 그런 경우를 초과의석이라고 하는데, 비례대표 의석 숫자가 30% 정도 되면 초과의석이 많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큰 흐름에는 지장이 없기 때문에, 그냥 초과의석이 발생한 부분을 인정해주는 방법도 쓰고 있다. 그럴 경우 다른 정당이 본래 할당받은 의석보다 의석이 줄어들면서 약간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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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haha96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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