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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국가기관들

기사승인 2024.08.15  18: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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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수
개미뉴스 이사

제79회 광복절 기념행사가 두 쪽이 났다. 정부와 독립운동단체가 따로 기념행사를 개최한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윤석열 대통령이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김형석을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하면서 촉발되었다. 김형석은 주권 강탈이 이뤄진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국적이 일본이라고 하는 등 퇴행적인 역사관을 가진 인물로서 독립기념과 관장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차라리 기피대상인물이라고 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처럼 국가기관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임명행위를 일삼고 있다. 여성가족부를 해체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진 사람을 여가부 장관으로 앉히고, 고용노동부에 반노동적 시각을 갖고 돌출행동을 하면서 노동계 기피대상으로 지목된 김문수를 장관으로 임명하고, 방송통신위원회에는 방송 장악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는 이진숙을 위원장에 앉히는 인사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양심적 병역거부, 낙태죄, 사형제 등 주요 인권 쟁점에서 소수자 인권 보호에 역행하는 행보가 적지 않았던 인물인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을 인권위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명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 스스로도 자신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행위를 일삼고 있다. 환경부는 4대강 사업의 '어두운 그림자'가 묻어난다고 평가받는 '4대강 14개 댐' 건설사업을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거짓 논리로 강행하고 있고, 기후위기라고 쓰고 돈벌이라고 읽는 산림청은 30년 된 나무를 ‘늙은 나무’로 매도하며 전국을 민둥산으로 만드는 벌목행위에 앞장서고 있다. 감사원은 용산 대통령실·관저 이전 불법 의혹에 대한 감사기간을 오는 11월10일까지로 연장하겠다고 한다. 2022년 12월 감사 착수 결정 이래 7번째 연장이며 명백한 직무유기다.

 

이처럼 국가기관이 총체적으로 자기 존재이유를 부정하고 있는 이면에는 자본의 논리에 충실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들 기득권자를 보호하는데 앞장서는 윤석열 정부를 방어하기 위해 광분하고 있다 공통점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3법, 쌍특검법, 채상병특검법, 이태원참사특별법, 전세사기특별법 등 남발된 법안 거부권의 목록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오만하고 정권방어에 물불을 안 가리는 불통행정의 모습은 2년3개월 재임 중 21번이나 법안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이전 정권에서는 최소한 87년 헌법체제의 형식적 민주주의를 유지하면서 기득권을 보호했다면, 윤석열 정권은 헌법이 보장한 자신들의 권한행사에만 집중하며, 그 어떤 명분이나 논리도 외면하고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마저 껍데기만 남은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자유 사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에 휘둘려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라며 “이들이 바로, 우리의 앞날을 가로막는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입니다” 라고 규정하고, “저와 정부는 우리 사회에서 자유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독주와 오만을 멈추지 않겠다는 선포다.

 

이렇게 껍데기만 남은 국가기관과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은 사명감이 없을 뿐 아니라 차라리 기생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저 자기들의 고용안정과 계급이익을 보존하는데 치중하고 있으며, 그 계급이익의 보존을 위해서는 자기가 속한 조직의 안위는 필수조건이다. 이른바 MZ세대의 공정논리는 신자유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들의 경쟁력을 인정받고자 하는 몸부림이며, 이렇게 어렵게 취직한 공공기관의 안위는 공정논리만큼이나 소중하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중간계급이 스스로의 계급보존에 목을 매달고 하층계급의 신분상승을 막는 행태를 보이면서 건국 초기의 건강성과 활동성을 잃어가고 있다. 건국 75년여 만에 계급사회가 고착됨으로써 국가 멸망 직전의 조선시대의 모습으로 회귀한 것이다.

본격적인 계급전쟁의 시대가 왔다. 윤석열 정권의 계급적 본성이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량한 쥐꼬리만한 기득권을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자기보다 힘 센 자들의 눈치를 보기 바쁘다. 이제 희망은 노동운동과 민중운동 진영에 있다.

 

미국 일극체제의 세계질서가 무너지고 다극화시대가 다가오면서 세계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주변 열강의 세력판도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한국의 노동운동세력에게는 시련이자 기회이기도 한 정세다.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국가,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국가, 노동자국가의 비전을 선명히 하고 우리의 역량과 준비태세를 점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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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수 reapg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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