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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노동절(메이 데이) 유래와 역사, 한국노동절의 역사

기사승인 2016.04.27  17:3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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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오는 5월 1일 전국 시도단위로 126주년 세계노동절 대회 개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1886년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인간선언!
‘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교육’ 쟁취 파업

세계노동절이 전 세계 노동자들의 공동투쟁과 단결의 날로 자리잡게 된 계기는 1886년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 쟁취 파업투쟁이었다.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투쟁 이전에 1884년 5월 1일 미국의 방직노동자가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쟁의를 시작하고, 각 노조가 이에 호응하여 총파업을 단행했다. 약 2년의 시간이 지난 1886년 5월 1일 시카고 노동자들이 결성한 '노동조합연합회'를 중심으로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교육’을 요구하는 총파업이 전개되었다.

8만 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이 미시건 거리에서 파업 집회를 열었다. 이날 파업과 집회는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에 대항하여 8시간 노동을 보장받기 위한 너무나 정당한 요구였지만 경찰과 군대의 발포로 유혈 사태로 번졌다.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넣은 이빨을 자랑질하고 100달러짜리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울 만큼 넘쳐나는 부를 누리는 자본가들에 반해 하루 12~16시간을 일해서 주급 7~8달러의 임금을 받으며 월 10~15달러 판잣집 방세를 감당해야 했던 노동자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터져나온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시키면 시키는데로, 주면 주는데로 억압되어 있던 노동자들이 드디어 노예노동의 사슬을 끊고자 스스로 조직하고 떨쳐나섰던 당당한 노동자임을 선언한 날이었다. 이로부터 세계노동절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자본주의가 세계를 무대로 급격한 폭력적 축적을이루던 1866년, 마르크스가 제1차 인터내셔널 강령에서 8시간노동제 법제화를 요구한 이래 노동시간 문제는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로 이행하던 19세기 후반 세계노동운동의 핵심 화두였다. 이러한 과제는 미국 노동운동에도 반영되어 광범위한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미국 시카고에서 터져나온 8시간 노동제 쟁취투쟁으로 공장 기계와 망치소리가 멈추고, 공장 굴뚝에서 솟아오르던 연기마저 멈췄다. 상가도 문을 닫고 운전수도 쉬었다. 노동자가 노동을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 날, 노동자 파업투쟁의 거대한 힘을 확인한 날이다.

파업집회의 현장, 헤이마킷 광장!
빵을 달라했더니 퍼부어진 총탄알 그리고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사형!

세상을 멈춘 노동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힘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파업과 시가행진을 나선 노동자들을 향해 경찰이 어린 소녀를 비롯해 6명의 노동자를 총으로 살해했다. 미국정부는 빵을 달라는 노동자들에게 빵 대신 총알을 퍼부은 것이다.

다음날 경찰 만행을 규탄하는 30만의 노동자와 시민이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 운집하여 평화집회를 열었다. 이때 누군가에 의해 폭탄이 터지고 경찰들이 미친 듯 몽둥이를 휘두르며 평화집회는 유혈의 장으로 변했다.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폭동죄로 체포됐고 사형, 장기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 헤이마켓 광장에 폭탄을 던진 것은 8시간 노동 쟁취운동을 분쇄하기 위해 독점 자본가들이 뉴욕에서 파견한 음모자들이 던진 것이 밝혀지면서 7년 후, 당시 구속 또는 사형된 노동운동가들이 모두 무죄임임이 증명되었다.

바로 이 사건이 바로 세계 노동운동사에 뚜렷이 자취를 남긴 헤이마켓 사건으로 8시간 노동을 쟁취하기 위한 미국 노동자들의 위대한 투쟁이었다.

1889년 7월, 파리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
‘5.1, 3대 연대결의 실천의 날’로 선언
5월 1일을 메이데이로!

3대연대실천은 “기계를 멈추자!”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투쟁을 조직하자” “만국의 노동자 단결로 권리쟁취를 위해 동맹파업을 행동하자”였다.

1890년 5월 1일을 기해 모든 나라, 모든 도시에서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국제적 시위를 조직하기로 결의했다.

각 국 노동자들은 1890년 5월 1일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를 외치며 제1회 메이데이 대회를 치렀다. 정작 미국은 사회주의의 냄새를 풍긴다는 이유로 노동절을 9월로 바꿔 그 투쟁의 의미를 희석시켜 버렸으나, 해마다 5월 1일은 전 세계 노동자들이 그 의미를 새기고 연대와 단결, 투쟁을 결의하는 노동자의 날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미국 헤이마켓 투쟁으로 사형된 미국노동운동가 스파이즈 법정 최후진술 중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신 앞에서, 뒤에서,사면팔방에서 끊일 줄 모르는 불꽃은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당신이라도 이 들불을 끌 수 없으리라“

▲ 집회주동자로 사형당한 스파이즈(August Spies)

 

<우리나라 노동절의 역사>

△ 한국 최초의 노동절행사

1923년 일제 식민지 시절, 당시 노동자의 자주적 조직인 ‘조선노동연맹회’ 주도하에 시작되었다. 약 2,000여명의 노동자가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실업방지” 등을 주장하며 1945년 해방되기 전까지 일제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완강하게 투쟁하였다.

△이승만정권, 대한노총이 주관하는 노동절

1957년 이승만은 “메이데이는 공산 괴뢰도당이 선전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으니 반공하는 우리 노동자들이 경축할 수 있는 참된 명절이 제정하라”고 한국노총에 지시했다. 이승만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대한노총은 노총 결성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결정했다.

△ 박정희정권, ‘근로자의 날’로 바뀌고!

박정희정권이 들어서고 노동절 이름마저 근로자의 날로 바꿨다. 이제 더 이상 단결과 투쟁의 자랑스런 노동자가 아니라, 정부와 자본의 축제에 들러리 서주는 근면한 근로자가 될 것을 강압한 것이다.

△ 1989년 제100회 노동절 전통 회복 선언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 운동은 단위노조에서 지역, 업종을 넘어 전국으로 들불처럼 확산되어 ‘노동법 개정 및 임금인상 투쟁본부’를 결성하였다. 1989년 투쟁본부는 제100회 메이데이를 앞두고 근로자의 날을 노동자 불명예의 날로 규정하고 굴욕에 찬 지난날의 근로자 인생을 청산하고 한국 전쟁이후 단절되었던 노동절의 전통을 회복할 것을 선언하였다.

△ 1994년, 날짜는 되찾았으나 아직 이름은

노동절은 아직도 ‘근로자의 날’로 정해져 있어 이름을 되찾기 위한 과제가 아직도 남겨져 있다. 1994년 이후 민주노총은 해마다 노동절과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노동자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을 힘차게 전개해오고 있다.

* 민주노총 홈페이지에서 옮겨 옴(http://nodong.org/data_paper/7052633)

▲ 2016년 세계 노동절대회 웹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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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선 kingsj878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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